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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총 여불비

설날을 맞으며 - 견디십시오 -

depression누구나 그렇듯이 내게도 설날에 대한 추억이 있다. 어머니가 지어주신 새 옷을 입고, 식구들과 떡국으로 차례를 지낸 후, 산소를 다녀와서는 동네 어른들께 세배를 다녔었다. 또래의 친구나 사촌들과 같이 세배를 다닐 때면 세배 돈과 함께 꼭 새해 덕담을 받았다.

그 말씀들은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라는 보편적인 말이 아니라, 각각의 사람들에게 맞는 말씀, 꼭 필요한 말씀들이었다. 예들 들자면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다지? 꼭 합격해라” “올해에는 꼭 취직하고, 장가가야지.” 등, 당사자들이 원하고 바라는 일들을 덕담으로 해 주셨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내가 세배를 받고 덕담을 해 줄 차례이다. 나는 올해, 우리 세탁인들에게 무슨 덕담을 해 줄 것인가 곰곰 생각해 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올해에는 가게를 넓히십시오”“올해에는 더 번창하십시오” 등의 말을 해 주고 싶은데 이 한파에 가벼운 우스갯소리가 될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유례가 없는 불경기에 개스비와 옷걸이 등의 자재 값이 올랐고, 매상은 바닥을 치는 이 한파가 힘들지만, 이 현실을 참아내고 용기를 내어보는 한마디를 드리려 한다. 그것은 “견디십시오” 이다. 새해 덕담치고는 썰렁하지만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 중의 하나이기에 감히 덕담으로 들어 본 것이다.

눈 앞에 꼭 넘어야 할 산이 있는데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눈보라가 치고, 내 발이 얼었어도 준비를 단단히 하면 못 넘을 것이 없다.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더 찬찬히 여미고, 편한 신발에다 양말을 두둑히 껴 신으면 무장은 끝났다. 이제는 묵묵히 걸을 뿐이다. 시간이 가고 내 걸음이 멈추지 않는다면 그 산은 이미 넘어간 것이 아니겠는가. 그 산을 잘 넘으려면 몇 가지 주의점이 있다.

첫 번째는 가족간의 결속이다. 우리 한인들이 경영하는 세탁업은 가족들 위주로 경영되는 일이 많으므로 가족간의 팀이 중요하다. 매상은 오르지 않는데 지불할 것들이 많아지면 신경이 예민해진다. 그러므로 서로를 존중하는 말과 태도 등에 관심을 가지고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 전에는 한잔 술로 피곤함을 달랬다면 이젠 그 마저도 삼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절약이다. 세탁업을 하면서 가장 돈이 많이 나가는 부분이 기계와 관련된 돈이다. 기계를 몰랐던 상태에서 시작된 비즈니스였으므로 숙달될 때까지는 경비가 나가게 되어 있다. 일이 많지 않아 시간이 나는 요즈음, 각종 기계나 시설의 정비를 하면, 기술자를 불러서 고치거나 손을 보았던 돈을 절약할 수 있다. 물론 기계나 파트를 다루는 기술은 덤으로 얻게된다.

세 번째는 관리에 신경을 써야한다. 제일 먼저 종업원 관리이다. 이들도 경기가 나쁜 줄은 안다. 나와 동고동락한 사람이라면 조금씩 나눠먹는 셈치고 같이 가지만 평소에 말을 잘 듣지 않았다거나 솜씨가 없다거나 성실하지 않았다면 조용히 정리하는 것도 내가 견디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벌금을 내지 않도록 각종 법률적인 일에 최선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다.

네 번째는 손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손님 중에는 말도 안되는 일로 트집을 잡고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 다시는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만 미운놈 떡하나 더 준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친절하게 응대할 필요가 있다. 그런 손님들도 쌓이면 내게 견디는 힘을 보태주기 때문이다.

새해가 밝았지만 우리 세탁업의 전망은 전보다 그리 밝지만은 않다. 많은 옷들이 집에서도 세탁이 가능하도록 생산이 되고 있고, 세제들도 개발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성실성이 손님들의 신뢰를 받게 되고, 또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우리의 업종은 나아가게 되어있다. 올해 우리 모두 인내하면서 이 불경기를 견디어보자.

(중앙일보 컬럼니스트 강현우 드림)